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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1/01 박정현과 정재범의 和한 무대
- 2011/10/08 오인혜 (2)
- 2011/10/07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베스트3
- 2011/09/10 내 휴대폰 - LG LB1700
- 2011/09/08 표현의 자유-가요에 대한 청보위의 19금 남발에 대하여
- 2011/09/07 옆 사람을 빛나게 만드는 사람
- 2011/08/21 도그빌(Dogville)과 노르웨이 테러범 브레이비크 (4)
- 2011/08/08 너희들은 못생겨서 항상 웃어야 한다
- 2011/08/03 동아원색대백과사전
가창력에 있어 내로라 하는 가수인 박정현씨와 최근 가수 임재범씨를 모창해 주목을 받은 정성훈씨가 좋은 무대를 보여주었습니다.
- 여자와 남자
- 가수와 개그맨
- 라이브와 녹화 : 정재범은 사전 녹화된 것입니다.
- 실재와 가상(사이버) : 끝난 후 정재범은 흩어지죠.
- 원본(원 가수)과 복제(모창 가수) : 원본들 끼리, 복제들 끼리의 무대는 흔해도 원본과 복제의 합동 무대는 드물죠.
자칫 충돌할 수 있는 이 모든 대립 구조를 온화하고 유쾌하게 넘어간 의미있는 무대.
이런 화和한 무대 정말 좋습니다.
1. 햄버거
2. 비빔면
3. 팥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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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 출시된 LG LB1700
240×320 해상도, 2인치 LCD, 2G폰.
게다가 난 여전히 018 유저.
예전에 어떤 만화평론가에게 심의 때문에 만화가들이 힘들다고 했더니, '그건 과거의 기억과의 싸움일 뿐이니,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려서 19금 붙여 팔라'고 하더군요. 19금이 아닌 내용조차 19금 결정이 나니 문제를 삼는 것인데 그분은 뭐가 문제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죠.
지금도 <간행물윤리위원회> 홈페이지에 가보면 청소년유해매체로 결정난 수많은 만화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만화가 아닌 가요에 대한 얘기지만 남의 일 같이 않아서 소개해 드립니다. 가요에 19금 심의결정을 남발함으로써 촉발된 SM과 여성가족부 사이의 송사에 대해서 제가 트위터에 올렸던 글을 정리해서 올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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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M, 여성가족부 상대 청소년유해물 취소 소송 >
http://news.donga.com/3//20110309/35439218/1
비슷한 수준의 선정성과 폭력성이라도 전하는 메세지에 따라 어떤 작품은 성찰과 대리만족을 주고, 어떤 작품은 잘못된 가치관을 전파하고 모방심리를 자극합니다. 즉 선정성이나 폭력성 그 자체가 아니라 메세지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술, 담배, 약 등의 특정 단어를 이유로 19금 판정을 내린 <청소년보호위원회>에 대한 대중의 비판이 빗발치자 청소년보호위원회 맹광호 위원장은 이렇게 항변했습니다.
"그걸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전문가들이 염려하는데 그 단어 한두 개를 빼도 아주 훌륭한 노래인데 그런 노력을 (가요계) 자율적으로 하도록 했는데 그걸 안하는 이유는... 저는 거꾸로 물어보고 싶어요."(시사매거진 2580, 2011.7.24)
세상 모든 것은 일단 생겨났다면 우선 존재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권리를 박탈하려면 왜 존재해선 안되는지 명백한 근거를 제시해야지요. 그런데 뭐? 문제의 소지가 있는 단어를 왜 굳이 사용하냐고? 그러면 문제의 소지가 다분한 당신들은 왜 굳이 살아있습니까?
게다가 전문가의 견해를 따라야 한다? 그렇다면 당신들 보다 더 인정받는 석학들 중에 술, 담배 등 단어를 문제삼아 19금 때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던가요? 없지요? 그렇다면 어떤 단어가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판정을 왜 당신들이 합니까. 당신들이 뭘 안다고.
청보위 회의록도 일부 공개되어 있습니다. 재미있는 내용이 가득합니다.
< "노랫말속 감기약도 ‘19금’에 걸렸다" >
http://www.hani.co.kr/arti/society/women/493612.html
무슨 위원, 어디 회원 등 타이틀을 붙여주면 자기가 뭐라도 된 양 우쭐해져 오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그릇 크기가 딱 그 정도라는 말. 그런 수준으로 하물며 창작자의 의도를 판단하고 창작품이 사회에 미칠 파장을 예측하겠다니 오만방자하달 수밖에요.
노래 가사에 술, 담배, 약 등이 들어갔다고 19금을 때릴 정도의 수준이라면 이런 자들은 문화에 대해 얘기할 자격과 능력이 없습니다. 차라리 세상을 더 나쁘게 만드는 암적 존재에 불과합니다.
결국 서울행정법원은 SM의 손을 들어주었고, 비판이 거세지자 여성부는 개선책을 내놓는 한편, 자체적으로 한 달간 심의 중단을 결정했습니다.
<청소년유해 음반심의 ‘공익기구’에 넘긴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women/493875.html
< 19금(禁)노래 심의 당분간 중단 >
http://news.donga.com/3/all/20110826/39840866/1
심지어 여성부가 존폐 위기를 자초했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 조롱거리로 전락한 여성부, 존폐위기 맞아 >
http://www.womennews.co.kr/news/50490
청보위는 앞으로 밀실에서 심의.결정하지 말고, 회의를 통해 도출된 결론을 공개적으로 개진하는 선에서 그치길 바랍니다. 합당하고 적절한 견해라면 공동체의 공론으로 당연히 받아들여질 테니까. 그것으로 족합니다. 청보위원에게 기대되는 역할이라는 것은. 무엇보다 당신들의 낡은 신념과 아집을 관철시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청소년을 이용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위원회는, 개인적으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지만 단체로 모였을 때는 아무 일도 해선 안 된다고 결정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프레드 앨런(Fred Allen 미국 코미디언)
예전엔 영화를 보면 영화 감상을 적었다. 그런 게 공부가 될까 싶어서. 하지만 지금은 안 쓴다. 감상평을 쓰면 쓸수록, 남의 작품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깊어질수록 나의 세계는 좁아지고 옅어지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모처럼 자료를 정리하다가 영화 <도그빌>(Dogville, 2003)을 보고 내가 쓴 감상평을 찾았다. 사실은 2008년 경에 쓴 영화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 2008)에 대한 감상평에 들어있던 내용이지만 지금 다시 읽어보니 그 의미가 적지 않다. 일단 그 중 일부를 발췌한다:
배트맨은 폭력 행사는 물론, 사생활 감시라는 '빅브라더'의 역할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바로 <다크 나이트>, 더 나아가 서구식 담론의 한계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과거 <도그빌>(Dogville, 2003)에서 보았던 한계 그대로다. 계몽주의의 화신으로 순교자적 희생을 감내하던 그레이스(니콜 키드만 분)의 최종 결론은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은 마을 주민에 대한 철저한 학살이었다. 그것도 아버지의 압도적 힘을 빌어서. <도그빌>이 탈계몽주의의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영화가 아닌 다음에야 영화의 결론은 '문명화'를 핑계로 타 문화권에 대한 학살을 자행했던 과거 서구 열강 제국주의자의 낡은 논변에서 한발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그 때도 무력 침략에 앞서 선교와 교육 활동이 먼저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처럼 어둠의 영웅, 필요악에 대한 옹호는 과정과 수단을 무시하는 결과 지상주의로 이어지기 쉽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것이다. '최악'을 막기 위한 '차악'은 차악일 뿐 '최선'이 아니다. 당연히 차악 역시 극복해야할 대상이지 추구하고 영웅시할 가치가 아닌 것이다. 그나마 <다크 나이트>가 <도그빌> 보다 나은 점은, 최소한 배트맨은 한 마을을 몰살한 후 득의양양하게 아버지의 차를 타고 돌아가는 그레이스처럼 뻔뻔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다크 나이트>의 배트맨은 개에게 쫒기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한다.
심지어 2005년에 내가 쓴 감상에선, <도그빌>의 진정한 얼치기 지식인이 톰인지 그레이스인지, 또 둘 중에 한 명을 꼭 죽여야 한다면 우리는 누구를 죽여야 하는지 반문하고 있었다. 이처럼 <도그빌>에 대한 내 감상은 한마디로 위험하고 폭력적이고 불순한 영화라는 것이었다. 이게 천재 감독의 걸작이라는 찬사가 이어졌던 <도그빌>에 대한 내 솔직한 평가였다.
그러다가, 올해 <도그빌>의 감독 라스 폰 트리에의 망언이 칸에서 터져 나왔다:
"나는 정말 유대인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러다가 내가 진짜 나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 가족은 독일인이었는데 이것이 나에게 기쁨을 주기도 했다"
"히틀러를 이해한다. 그는 좋은 사람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는 그를 많이 이해한다. 조금은 그에게 공감도 한다"
"유대인을 조금은 싫어한다. 이스라엘은 골칫거리이기 때문이다."
"좋다. 나는 나치다. 예술의 측면에서라면 나는 스피어를 지지한다. 그는 신이 나은 최고의 인간이다"
이런 트리에의 망언에 사람들은 놀랐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는 <도그빌>이라는 괴작을 만든 감독이었으니까. 마지막 대학살극을 보며 관객들이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의가 승리한 듯 후련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치밀한 플롯을 짜놓은 감독이었으니까.
문제는 그 괴작이 결과적으로 재앙과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77명의 무고한 생명을 학살한 노르웨이의 테러범 브레이비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자신이 세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가 <도그빌>이라고 밝힌 것이다( 나머지 두 개는 글레디에이터와 300). 내가 <도그빌>에서 받았던 위험한 메세지를 브레이비크 역시 고스란히 받았던 것이다. 실제로, 우퇴위아 섬에서 자행된 브레이비크의 참혹한 학살 과정은 <도그빌>의 마지막 장면과 유사하다.

브레이비크가 <도그빌>을 봤기 때문에 테러범이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트리에 감독의 주장과는 달리 <도그빌>은 폭력을 경계하고 고발하는 영화가 아니라 오히려 어떤 폭력에 대해선 정당성을 부여하는 메세지를 담은 영화이고 이런 메세지는 어떤 사람들에겐 분명하게 인지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실이 나에게 무슨 의미인가. 의미가 있다. 최소한 나는 명작과 괴작을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으며, 은폐된 위험을 감지할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가 된다. 이 증거는 내가 내 작품을 충분한 수준에서 통제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고 이 믿음은 내가 표현의 자유를 조금 더 과감하게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명분을 준다.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 나 자신에게. 이 안목이, 이 감각이, 내가 창작을 하는 기준이 된다.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람은 누구나 나는 착한가? 나는 영리한가? 나는 잘 생겼나? 나는 철이 들었나? 나는 능력이 있나? 나는 인격이 고매한가? 나의 취향은 보편적인가? 나는 자질이 있나? 나는 자격이 있나? 등의 수많은 의문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런 식의 시작과 끝이 없고 기준도 없는 의문에 대한 정답은 그 누구도 줄 수 없다. 심지어 자신조차도. 다만 주위의 평가, 이루어 놓은 객관적 성취, 혹은 특별한 체험이 자기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데 너무 의미없지는 않은 조촐한 단서가 될 뿐이다.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너무 희미하지는 않은 작은 거울이 될 뿐이다.
창작의 과정에서 나를 괴롭히던 여러 질문들, 나를 몰아붙이던 여러 논리들, 나를 움츠려들게 만드는 내면의 목소리들, <도그빌>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은 그런 나에게 작은 디딤돌이 되어 주었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나는 잘못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 한 발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동아출판사> 김상문 회장님은 자신의 역작인 <동아전과>와 <동아대백과사전>을 관 속에 넣어달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이 <동아대백과사전>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두산대백과사전(EnCyber)>입니다. <동아대백과사전>을 만드느라 출판사의 자금사정이 어려워졌고 그래서 다 만들어 놓은 <동아대백과사전>을 <두산그룹>에 판 것입니다. 하지만 관 속에 담아가고 싶은 걸 만들어낸 인생이라면 분명 성공한 인생일 것입니다.

동아원색세계대백과사전( 이미지 출처: http://www.yes24.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