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가수다>의 방송취지, 방송포맷, 방송규칙에 대하여
어쩌면 <나는 가수다>와 관련해 발생한 혼란은 용어의 부적절한 사용에서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부터 보다 엄밀한 용어를 사용하기 위해서 먼저 용어부터 정리하겠다. 다음은 <나는 가수다> 홈페이지에 있는 프로그램 설명이다.
( http://www.imbc.com/broad/tv/ent/sundaynight/ )
해당 부분을 정리해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 방송취지: 아이돌 그룹들과 댄스음악으로 편향된 방송 가요계에 다양한 음악이 공존하는 무대! 진짜 가수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든다!
- 방송포맷: 대한민국 최고 가수들의 노래 대결. 레전드급 가수들의 극한 서바이벌! 가수들의 진지한 음악관과 개그맨들의 엉뚱함을 믹스.
- 방송규칙(노래 대결이라는 포맷의 세부 규정): 한 사람은 탈락해야 한다!!!
이처럼 논란이 된 탈락여부는 방송취지도 아니고 방송포맷 자체도 아니고 기껏해야 방송포맷을 구성하는 일개 요소인 방송규칙에 불과하다 (탈락∈규칙, 규칙⊂포맷). 그런데 지난 <나는 가수다> 3회에선, {7위는 탈락이라는 규칙, 지속 가능한 방송포맷 개발, 출연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라는 3개의 가치가 서로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즉 규칙에 따라 김건모를 그냥 탈락시키자니 다른 출연자들이 받은 충격이 너무 커 남은 녹화는커녕 프로그램의 존속까지 어려운 상태였던 것이다.
이는 규칙보다 더 중요한 방송포맷과 방송취지의 실현이 힘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국민가수 김건모조차 첫 번째 경연에서 탈락할 수 있다면 심지어 조용필이 나와도 운 나쁘면 2주 동안 단 한 번의 무대밖에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이 되고, 그렇다면 이렇게 부담은 엄청나면서 기대효용은 떨어지는 프로에 명성 있는 중견 가수가 출연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오려는 좋은 가수가 없으면 당연히 프로그램도 지속될 수 없다. 이른바 "지속가능한 방송 포맷"이 아니게 되었다는 말이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이소라를 위시한 출연자와 제작진은 이를 온몸으로 직감했던 것 같다. <나는 가수다> 제작진과 출연자들은 잠시 진행을 멈추고 원점에서 재검토를 했고 그 결과로 {방송규칙 준수, 방송포맷 개발, 출연자 배려}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은 게 바로 재도전 제도의 도입인 것이다.
방송이 유지된 다음에야 방송취지도 실현될 수 있는 것이기에, 출연자를 배려해 방송규칙을 수정한 그들이 옳다. 실제로, 재도전 허용으로 인해 <나는 가수다>의 운신의 폭이 급격히 확장되었다. 일단 가수로선 재도전의 기회를 보장받기에 출연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었고, 원한다면 최소한 4주의 방송분량도 확보할 수 있기에 결과적으로 출연에 대한 기대효용은 증가했다. 제작진으로선 그만큼 출연자 섭외가 용이해졌으니 방송이 유지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 <나는 가수다>가 시행착오를 통해 결과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응원해 주는 게 맞다.
2. 약속과 설명에 대하여
- 약속: 다른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여 둠.
- 설명: 어떤 일이나 대상의 내용을 상대편이 잘 알 수 있도록 밝혀 말함. 또는 그런 말.
MBC측은 '7위 득표자 탈락'은 시청자와의 약속이기에 기본 원칙을 지키지 못한데 대한 책임을 물어 김영희 피디를 경질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7위는 탈락'을 "약속"으로 규정하면 여러가지 논리적 문제가 발생한다. 예컨대, 어떤 두 사람이 "우리 2시에 여의도에서 만나자"라는 약속을 했는데 누군가 약속을 어기고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 나간 사람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욕먹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나는 가수다>가 7위를 탈락시키지 않아서 시청자들에게 어떤 피해가 발생했나?
방송에서의 약속은 다수 대중을 상대로 한다는 점에서 정치인의 공약과 비슷하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예컨대, 어떤 정치인이 "만화산업 육성에 2조를 투입하겠습니다."라고 공약을 걸었으나 실제로 이행하지 않았다면 약속을 믿고 표를 준 국민들의 뜻을 대변하지 않은 것이니 욕먹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나는 가수다>가 7위를 탈락시키지 않아서 시청자의 어떤 뜻이 대변되지 못했나? 아니, 그전에 누구를 탈락시켜야 한다는 뜻이 시청자에게 있기라도 했나? 하물며 직접 한 표를 행사한 500인의 청중 평가단도 가장 마음에 드는 가수를 선택했지 탈락시키고 싶은 가수를 선택한 게 아니다. 그렇다면 '7위는 탈락'이라는 "약속"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고 누구를 위한 것이며 누구를 위해 지켜져야 하는 것인가?
이런 설명하기 곤란한 문제들은 약속이 아닌 것을 무리해서 약속으로 규정하려니 생기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7위는 탈락됩니다.'를 "약속"이 아니라 "설명(규칙을 시청자에게 알리는 행위)"으로 이해하는 순간 사라진다. <나는 가수다>의 "약속"은 방송취지에 그대로 드러나 있듯이 '레전드급 가수들의 멋진 무대로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것'이고 '7위는 탈락합니다.'라는 부분은 '7위는 탈락'이라는 규칙에 대한 "설명"인 것이다. 재도전을 허용함으로써 규칙이 바뀌었으니 앞으로는 '7위는 재도전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라고 고쳐서 다시 설명하면 된다. 그럼 시청자는 이 바뀐 설명을 듣고 앞으로 방송시청의 참고로 삼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 3회에 규칙을 바꾼 이유와 바뀐 규칙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원칙"이라니? 원칙은 다른 규칙들의 근본 규칙으로서 다른 규칙이 변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최후의 규칙이다. 소위 "끝판 대장"이다. 따라서 원칙이 되려면 마지막까지 지켜야할 가치가 있어야 한다. 이게 "악법도 법이기에 일단 지켜야한다."라는 말이 원칙이 될 수 없는 이유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7위는 탈락'도 규칙이기에 일단 지켜야한다."라는 말에도 원칙으로 삼을 정도의 가치는 없다. 게다가 규칙의 개정만으로도 덩달아 달라지는 설명 따위가 어떻게 원칙의 구성요소가 될 수 있겠는가.
3. 원칙과 정의에 대하여
- 원칙: 어떤 행동이나 이론 따위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
- 정의: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
"김건모는 탈락해도 김건모다." <나는 가수다>를 비난하는 네티즌들이 자주하는 말이다. 이 말의 의미는 김건모가 7위로 탈락해도 김건모의 실력이나 명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니 재도전하지 말고 처음의 규칙에 따라 쿨하게 탈락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즉 네티즌들은 김건모의 탈락여부가 아니라 사전에 공지된 '7위는 탈락'이라는 규칙인 지켜지지 않는 상황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네티즌들의 입장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탈락시키기로 했으면 그 대상이 누구든지 꾸물대지 말고 빨리 탈락시켜"가 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탈락이 남의 일이니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네티즌들은 기존의 탈락 방식이 가수들에겐 엄청난 고통이라는 사실을 방송에서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와는 상관없는 고통이기에 마음 놓고 남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가수다>가 시청자에겐 그저 일요일 밤의 재미겠지만 출연한 가수들에겐 삶 자체가 연관된 극한의 무대다. 이런 부담에도 불구하고 가수들이 탈락에 연연하지 않고 그 과정을 즐겼다면 모르겠으나 당사자들이 고통스러워 규칙의 개정을 원했다면 규칙의 개정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 어떤 재미도 남의 고통으로부터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게 성숙한 사회의 "원칙"이자 "정의"이기 때문이다. "'7위는 탈락'도 규칙이기에 일단 지켜야한다." 따위가 아니라 이런 게 바로 소위 "원칙"이다. 이런 원칙과 정의는 방송포맷 하부의 규칙 준수보다 무조건 우선한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유태인 학살은 '악한 의도'가 아니라 '생각하지 않음'에서 비롯되었다고 결론 내렸다. 나치 수용소 군인들은 유태인 학살에 대한 가치판단 없이 사전 고지된 절차와 규칙에 따라 유태인들을 가스실로 보낸 것이다. 그런데 이들 군인들과 규칙의 시행을 강요하는 네티즌 사이에는 상대의 입장에 대한 역지사지적 고려와 이심전심적 연민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네티즌들 역시 기존의 탈락 방식에 대한 가치판단 없이 사전 고지된 절차와 규칙에 따라 가수의 탈락을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전기의자 실험'을 통해 권위자의 지시 혹은 사전 규칙에 따라 타인의 고통에 쉽게 눈감는 사람들의 행태를 잘 설명한 바 있다.
개중에는 긴장감 넘치는 자극적인 재미를 위해 서바이벌이라는 포맷과 탈락이라는 규칙을 보다 엄정하게 적용해줄 것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남의 고통을 전제로 한 이기적인 재미는 반드시 지양되어야 한다. 나는 <나는 가수다>가 좀 덜 스릴 있더라도 아주 오랫동안 방송되었으면 좋겠고, 출연한 가수가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무대를 미련이 남지 않을 정도로는 보여줬으면 좋겠다.
4. 청중 평가단의 투표가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비판에 대하여
<나는 가수다>가 500인의 청중 평가단의 투표행위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있다. 그렇다면 500인의 청중 평가단이 배신감에 소송을 걸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나는 가수다>가 사기죄로 입건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공연을 관람하고 한 표를 행사한 당사자들은 가만히 있는데 제 3자들이 <나는 가수다>을 비난하기 위한 명분으로 그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뿐이다.
정치인의 선거는 투표의 '의도'와 투표의 '기능'이 일치한다. 자기가 뽑고 싶은 사람에게 투표를 하면 그 표가 그 후보의 당선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런 절차는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의 입법을 통해 법률에 명시된 것이기에 정당성이 있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의 투표는 성격이 좀 다르다. 500인의 청중 평가단이 가장 마음에 드는 가수에게 투표하면 그 표가 그 가수가 1위가 되는 것에 기여하는 것까지는 일반적인 선거 투표와 비슷하지만, 이 투표는 사실상 집계 결과에서 7위를 한 출연자를 탈락시키는 기능을 한다는 점이 다르다. 즉 '의도'와 '기능'이 불일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투표에 참여한 500인의 청중 평가단은 물론이고 시청자 그 누구도 탈락자를 지명한 바 없다. 따라서 청중 평가단의 투표를 <나는 가수다> 제작진이 임의로 재해석해 탈락자를 선정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투표자의 의사에 반하는 월권행위이다. 예컨대 "어떤 가수의 무대가 가장 좋았습니까?"라는 질문과 "어떤 가수의 무대가 가장 나빴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순위 결과는 다를 수 있고, 심지어 "어떤 가수의 무대가 가장 나빴습니까?"와 "어떤 가수를 탈락시키고 싶으십니까?"라는 질문의 결과도 다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가수다>는 "어떤 무대가 가장 좋았습니까?"라고 묻고는 그 결과를 물경 탈락의 근거로 전용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7위는 탈락'이라는 규칙은 조금의 정당성도 없다.
하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규칙이라도 당사자인 가수와 개그맨이 동의했다면 그다지 문제될 게 없다. 문제는 동의를 철회할 때이다. 그런데 지난 3회에서 가수들과 개그맨들은 기존 규칙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표명했다. 최소한 이소라와 김제동의 경우는 방송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그렇다면 제작진이 만든 이상한 규칙은 존립 근거가 없어진다. 따라서 바로 폐기하고 다른 방식을 찾아야한다. 굳이 비유하자면 SM과 소속가수들이 13년 전속계약을 맺었다고 하더라도 당사자인 가수들이 도중에 문제성을 인식하고 이행을 거부한 경우, 법리적 검토를 통해 문제가 인정되면 계약기간 13년은 제 아무리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인정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위 <나는 가수다>의 이상한 탈락 규칙은 너무 이상해서 따로 검토조차 필요 없는 사안이다. 이처럼 7위는 탈락이라는 규칙은 정당성이 없기에 적용을 강요할 수 없다.
<나는 가수다>에서 이루어지는 선호도 투표는 청중 평가단이 원해서 권리차원에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제작진이 방송 진행상 순위를 가려야 하기에 협조를 구하는 형식이었다. 즉 제작진이 투표를 요구하니까 하는 것이지 청중 평가단이 한 명을 떨어뜨리고 싶어 자진해서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탈락자에게 재도전 기회를 부여해도 청중 평가단이 배신감을 느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청중 평가단은 어쩌면 자신의 투표가 출연가수의 탈락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 개정된 규칙을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책임소재가 분산될 때 청중 평가단의 어깨가 더 가벼워지고, 더 마음 편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가수들이 보여주는 수준높은 공연을 마음껏 즐길 수 없다면 그게 더 안타까운 일이다.
5. 출연자들의 처신과 제작진의 편집 미숙에 대하여
(1) 출연자들의 언행에 대하여
김건모: 규칙을 개정해 재도전을 하나의 선택지로 만드는 것에 동의하더라도 김건모까지 그 새로 바뀐 규칙의 적용을 받을 필요는 없다는 반박이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만약 김건모가 재도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이게 선례가 되어 이후로 재도전이라는 선택지는 유명무실해질 위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가수다>를 긍정한다면 김건모의 재도전도 긍정하는 게 맞다.
이소라와 김제동: 이 두 사람은 서바이벌 규칙에 동의하고 <나는 가수다>에 출연했으나 막상 그 중 한명이 탈락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뭔가 잘못되었다' 내지는 '이게 아니다'라는 판단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관성에 따라 상황을 진행시키기 보다는 모든 상황의 진행을 중지시키고 원점에서 다시 재검토하는 게 맞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온 것이 재도전 제도이기에 이소라와 김제동의 당시의 처신은 적절한 것이었다.
박명수: 굳이 잘못 처신한 출연자를 한 명 꼽으라면 제작진이 진행하라니 별다른 고민 없이 진행한 박명수이다. 잃을 게 없는 박명수는 "개그맨"으로서 상황을 진행시켰지만 심각한 부작용을 직감한 이소라는 "가수"로서 진행을 거부한 것이다. 이소라의 "나 방송 못하는데 왜 방송 진행하고 난리야. 이거 편집해달라고 할거야. 이렇게는 못해."라는 발언이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박명수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다. 사실 출연자 모두가 별로 잘못한 게 없다.
(2) 방송의 편집에 대하여
방송 후반부의 어수선하고 가수들을 보호하지 않는 듯한 편집에 대한 비판이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재도전 허용의 명분은, 고통을 느낀 당사자인 가수들과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해야 하는 제작진이 서로 합의를 본 대안이었다는 데서 나오는 것이기에, 이 과정을 편집하지 않고 방송으로 내보낸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곰곰이 방송 내용을 돌이켜보면 방송 후반부는 버릴 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시청자에게 반드시 보여줘야할 장면과 설명해야할 내용만으로 밀도 있게 꽉꽉 채워져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후반부는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해 구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규칙 개정의 정당성을 논리적인 설명을 통해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시청자가 원한 것은 그저 재미와 감동이었는데 제작진은 자신들의 규칙개정과 처신에 대한 명분을 제시하는데 급급했다는 데 있다. 이런 편집은 시청자 일반이 아니라 다른 전문가와 여론주도층(그냥 언론이라고 하자)과의 소통에 중점을 둔 것이니 굳이 문제를 삼으려면 삼을 수도 있겠다. 예컨대 자신의 배려부족으로 마음이 상한 연인 앞에서 자기 처신의 정당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양상이니 말이다. 경험에 비춰보면, 이런 설명은 대개 그다지 소용이 없다. 제작진의 정공법적인 방식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효과가 떨어진다는 말이다.
이런 패착은 예상되는 언론의 비판에 제작진이 미리 너무 겁을 먹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언론의 비판을 모면하기 위해서 명분 제시에 급급하다가 시청자들이 원한 재미와 감동에 소홀해진 것이다. 문제는 언론의 행태이다. 김영희 피디가 방송과 언론 인터뷰에서 규칙 개정의 명분과 과정의 적합성에 대해 그렇게 상세하게 설명을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수다> 사태가 이지경이 될 때까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 논란을 부추기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 문제는 아래 '7항'에서 다시 다루겠다.
오해를 막기 위해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이 글의 논지는 "재도전 허용은 잘못된 선택이지만 지금의 비난은 정도가 과하다"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재도전 허용은 원칙적으로, 그리고 정의라는 관점에서 바람직한 선택이었다."는 말이다. 즉 이소라, 김제동, 김건모, 김영희 모두 옳게 처신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비난은 적절하지 않다는 말이다.
6. 규칙 개정에 대한 사전공지가 미흡했다는 비판에 대하여
재도전을 허용하는 규칙의 개정이 있은 후에도 이를 미리 시청자에게 공지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제작진의 실수이다. 여기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제작진은 실제 방송에서 바뀐 규칙에 대해 다시 설명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시청자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었다. 배려를 받지 못한 시청자의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기분이 상한 시청자는 비협조적이 되거나 심하면 난동을 부리게 되어 있다.
하지만 애초에 시청자들이 원한 것은 누군가의 탈락 그 자체가 아니라 서바이벌이라는 포맷과 7위는 탈락이라는 규칙을 통해 재미와 감동을 얻는 것이기에, 방송을 통해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재도전에 대한 사전 공지 미흡만을 문제삼으면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하물며 <나는 가수다>는 서바이벌이라는 포맷을 그래로 유지한 상태에서, 7위는 탈락이라는 기존 규칙에 대한 완충장치로, 재도전이라는 규칙을 하나 더 첨가한 것뿐이다. 이정도의 규칙 개정이라면 사전 공지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시청자가 용납 못할 수준은 아니다.
성경은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고 했고, 공자는 '과실을 보면 그 인(仁)함을 안다'고 했다. 군자는 군자다운 실수를, 소인은 소인다운 실수를 저지르는 법이니 어떤 사람의 실수를 보면 그 사람이 군자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가수다>가 범한 사전공지 미흡이라는 실수는 시청자에게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주거나 시청자를 낚는 재미를 만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더 많은 재미와 감동을 주려는 좋은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굳이 따지면 군자다움에서 나온 착한 실수이니 이해의 여지가 있다는 말이다.
7. 논란이 지나치게 과열되고 감정적으로 흐른 이유에 대하여
앞서 언급한 절차와 규칙에 대한 준수 요구만으로는 <나는 가수다>에 대한 비난 광풍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우리나라는 규칙준수를 그렇게 까다롭게 요구하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완고한 원칙주의자 보다는 오히려 융통성 있는 변칙주의자를 더 높게 평가하는 나라이지 않던가. 논란이 지나치게 과열된 이유는 내가 보기에 다음과 같다.
(1) 속상한 일부 네티즌의 감정적 배설
<나는 가수다>를 필요이상으로 비난하는 사람들은 누군가 탈락할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를 내면화하고 있었는데, 방송이 재도전을 허용함으로써 자신의 믿음과 기대가 배반당하자, 결과적으로 자신이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미리 알려주지 않은 제작진의 배려없음에 기분이 상했던 것이다. 기분이 상하자 감정적인 화풀이를 시작했고, 자신의 화풀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원칙"이니 "시청자와의 약속"이니 그럴듯한 핑계 꺼리를 끌어들인 것이다. 어설픈 핑계는 비판을 부르고 비판을 당하자 인지부조화 상태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공격적인 논리들을 신념화한 것이다. 마치 <나는 가수다>를 처단해야 공정사회가 이룩되는 것 마냥.
요컨대 낚여서 기분나쁘다는 사소한 이유로 <나는 가수다>의 제작진과 가수들을 죽어라 까댄 것이다. 자기 손가락에 박힌 가시 하나에 유난 떨며 남의 등에는 칼을 꽂은 것이다. 자신은 가벼운 비판만 당해도 정신을 거의 잃을 정도로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토끼 같은 사람들이 남을 비판할 땐 거의 불감증 수준에서 사자 같은 공격성을 보인 것이다.
그 화풀이의 결과는 참혹하다. 좋은 취지로 <나는 가수다>를 만든 김영희 피디는 경질되었고, 엄청난 부담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가수들에겐 상처만 남았으며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은 사실상 그 생명을 다했다. 다시 재편성을 하더라도 이전과 같은 의미와 가치를 담을 가능성은 없다. 사안에 대한 이해 없이 함부로 그리고 습관적으로 비난에 동참하다보니 어느 순간 프로그램의 폐지와 변질이라는 전혀 원하지 않은 결과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그림의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손가는 대로 그리다가 결국 그림을 망친 경우이다. 이 얼마나 한심하고 안타까운 상황인가. 메뚜기 떼가 지나간 들판처럼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이 황폐함이 아쉽고 아쉽다.
그리고는 말한다. 김영희 피디도 경질되고 김건모도 하차했으니 이제 그만 <나는 가수다>를 용서하자고. 가해자가 오히려 피해자 행세를 하는 엽기적인 장면이다. 또 <나는 가수다>를 잘 정비해 다시 방송해 달란다. 그러니까, 유례가 없을 정도로 특별한 방송이었던 <나는 가수다>를 여전히 공짜로 TV에서 보고 싶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애초에 엄청난 부담에도 불구하고 좋은 취지에 공감해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가수들의 입장을 최대한 배려하고 존중했어야지. 축제의 흥을 깨고 판을 엎어놓고 그래도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인간이라면 염치를 먼저 알아야 한다.
(2) <나는 가수다>에 적대적인 태생적·환경적 맥락
나는 <나는 가수다> 첫회를 보고 이미 알 수 있었다. "이건 인간적이구나! 이건 전복적이구나! 이건 예술이구나!" 아마 다른 사람들도 <나는 가수다>가 놓인 맥락을 바로 직감했을 것이다. 태생적으로 적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그 적은 크게 이미 기득권을 형성한 구세대, 아이돌 관련자와 팬, 기존 서바이벌 프로그램 관련자와 팬, 경쟁 방송 프로그램 관련자와 팬, 기타 등등이다. 이건 얘기가 너무 길어지고 부족하나마 이미 써놓은 글이 있으니 링크로 대신한다.
- 예술적인 <나는 가수다>: http://yonggwan.net/225
- 인간적인 <나는 가수다>: http://yonggwan.net/233
아마도 <나는 가수다>를 본 후 <위대한 탄생>, <슈퍼스타K>, 아이돌 무대를 본 시청자라면 감흥이 예전같이 않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가수다>는 그만큼 폭발적으로 강한 엔진이 탑재된 전복적 프로그램이었다.
(3) <나는 가수다> 사태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여론주도층
<나는 가수다>에 대한 비판이 있다기에 꽤 많은 글과 기사를 검색해 읽어보았다. 하지만 그 중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대중문화에 대한 식견과 이해를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원곡 그대로 전해주는 <라라라> 같은 전문음악프로보다 노래 사이에 인터뷰를 넣고 심지어 노래를 자르기까지 하는 <나는 가수다>를 보며 사람들이 왜 더 감동을 받는지조차 모르는 문외한들이 대다수였다. 읽어보니 내용이 정말 가관이었다.
문화와 예술은 이론과 실기가 결합된 매우 섬세하고 전문적인 분야라서 관련해 비평을 하려면 전문적인 지식은 물론이고 문화예술인에 버금가는 예술적 재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게 우리나라에선 딱히 전문분야가 없는 사람들이 손쉽게 선택해 부담 없이 글을 쓰는 영역이 이른바 "문화 평론"이다. 써놓은 글을 읽어보면 사안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개인적인 의도와 편견만 가득한 시청소감 따위에 불과하다. 이러니 문화예술의 발전은 고사하고 관련해 어떤 이슈가 터졌을 때 뭐하나 제대로 정리되거나 봉합되지 않고 논란만 가열되다 모두가 패배자로 상처만 남게 되는 것이다.
얄팍한 이해수준으로 광기어린 비판에 동참하더니 이제와서 '너무 과했나'라며 반성을 촉구하는 태도는 또 뭔가. 여론 지형의 등고선을 보면서도 여론이 흘러갈 방향과 결과가 예측이 안되는 수준이라면 애초에 나서질 말았어야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어떤 사회에서 여론이 도덕적, 합리적, 생산적으로 흐르지 않고 있다면 이는 여론주도층 혹은 여론관련 직군이 무능하거나 게으르거나 부도덕하기 때문이다. 대중의 잘못은 그리 크지 않다. 자격 없는 사람들의 발언권은 축소되어야 한다. 스킵(skip)과 무관심이 답이다.
8.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가수다>는 김영희 피디니까 만들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다. 문제가 된 재도전 허용 결정도 김영희 피디가 국장급 피디였고, 그런 국장급 피디가 가수들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해주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항간의 비난과는 달리 솔직히 가수를 이정도로 극진히 대접해준 예능은 이전에 없었다. 나는 그런 모습이 참 보기 좋았으나 그 김영희 피디가 원칙을 어겼다는 불명예를 안고 사실상 경질되었다. 가수들을 극진히 대접하다가 자기 스스로에 대한 방어에 실패한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가수가 아니라 서바이벌이라는 방송포맷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나는 가수다>의 주인공이 가수들 스스로가 아니라 서바이벌이라는 방송포맷이 된다면, <나는 가수다>는 존재의 가치를 잃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던 것처럼 기성가수들을 이용한 자극적인 서바이벌 쇼프로에 불과해진다. 이런 프로그램에서 가수들이 행복할 리도, 이런 프로그램에 좋은 가수들이 나올 리도, 이런 프로그램이 오래갈 리도 없다.
애초에 <나는 가수다>는 가수들에 의한, 가수들을 위한, 가수들이 행복한, 가수들의 프로그램이 되어야 했다. 규칙을 정하고 수정하는 최종적인 결정권은 시청자가 아니라 당사자인 가수와 제작진에게 있어야 했다. 시청자는 그들을 길들이고 그들에게 규칙 준수를 압박하는 권력이 아니라 그들의 공연장을 찾은 팬들처럼 그들이 정성껏 준비한 공연을 마음껏 즐기는 관객으로 충분했다. 당사자인 가수와 제작진의 결정조차 이정도로 존중받지 못하는 프로그램이라면 나는 응원할 마음이 전혀 없다.
각설하고,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을 막거나 이미 발생한 논란을 연착륙시키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1)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말라. (이미 이 단계는 지났다)
(2) 고름은 살이 되지 않는다.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잘못된 일을 원상복귀 시킬 수 있다면 원상복귀 시키는 게 옳다. 김영희 피디는 다시 복귀해야 한다. 그리고 김건모의 명예는 반드시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 무개념 네티즌과 언론 종사자는 김건모 앞에 진심으로 사죄하라. 하다못해 아고라 청원이라도 해서 사죄의 성의를 보여라.
이게 힘들다면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던 가수들 역시 하차하는 게 바람직하다. 가능하다면 유사한 프로그램이 제작되더라도 출연하지 않겠다는 공감대를 다른 동료 가수들과 공유하는 게 좋겠다. 당사자인 가수와 제작진의 결정조차 이정도로 존중받지 못하는 방송은 존재해선 안 된다. 이미 자기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명망 있는 가수들이 개념 없는 쇼프로의 방송재료로 자극적으로 소비되어선 안 된다. 혹시 지금의 <나는 가수다>에 미련이 남더라도 어쩔 수 없다. 안타깝지만, 고름은 결국 살이 되지 않는다.
네티즌은 물론이고 우리 모두에게도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약간 시간이 흐른 후에, 김영희 피디와 가수들이 <나는 가수다>를 다시 시작하면 좋겠다. MBC에서 안되면 SBS나 KBS로 옮겨도 상관없다. 기다리다가, 그때가 되면 나는 다시 <나는 가수다>를 응원할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이런 방송을 보며 감동을 받을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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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나는 가수다>와 관련해 내가 쓰는 마지막 글이 될 것 같다. 좀 더 정리할 문제가 남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선 굳이 정리해야 할 이유가 없다. 혹시 첨가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나중에라도 이 글을 수정해 첨가할 생각이다.
- [3.26.18:12] "2. 약속과 설명에 대하여" 추가
- [3.26.23:37] "4. 청중 평가단의 투표가…"에 '글쎄요'님과의 토론 내용 추가
- [3.27.10:56] "5. 출연자들의 언행과…"에 '희한한 원칙의 정의'님과의 토론 내용 추가